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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권한 행사로 인한 국정 마비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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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권한 행사로 인한 국정 마비 상태나 부정선거 의혹은 병력을 동원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고 헌법에 따른 국군 통수의 의무를 위반했다”헌법재판소가4일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재판에서 만장일치로 인용 결정을 내리면서 밝힌 두 문장은길이는 짧지만 그 안에 군 통수권자의 권한과 문민통제 범위, 정치적 중립 문제를 모두 담고 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기일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군은 정치적 문제에서 거리를 두고 문민 통제 원칙을 받아들이며 국가안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로 인한 국민적 신뢰가 조금씩 쌓이던 시점에 발생한 12·3 비상계엄 사태는 군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장병들이 시민들과 대치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면서 군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윤 대통령이 파면됨에 따라 정치권은 군 조직을 추스르는 한편 문민통제와 정치적 중립에 대한 근본적 고민을 해야 하는 국면을 맞게 됐다.◆나라 위해 봉사한 군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 줬다12·3 비상계엄 사태는 국가와 국민, 군 조직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다.계엄군으로 출동한 장병들은 시민의 강한 저항을 받았다. 계엄 당시 국회에 출동했던 특전사 부대원들은 “우리가 왜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해야 하나”는 등의 자괴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지난해 12월 3일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계엄 해제 직후 군은 더욱 혼란스런 국면을 맞이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모셨던 상관, 함께 훈련했던 동료가 수사기관에 소환·구속되거나 보직해임을 포함한 징계를 받았다. 국방부와 육군본부, 국군방첩사령부 등 핵심 기관과 부대들이 수장을 잃고 대행 체제로 전환했다.상명하복을 생명처럼 여기는 군 조직에서 사령관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역동성과 창의성, 방향성을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문을 열고 '비상계엄'을 선포한 3일 밤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2024.12.3/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정지형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현직 대통령으로는 11년 만에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한 것은 2022년 5월 취임 이후 거야와 계속된 충돌이 극에 달했던 사례로 꼽힌다.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포함해 각종 재판을 받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국정 운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은 윤 대통령은 야당 강행 처리 법안에 거부권으로 맞서며 대립각을 세웠다.의석수를 앞세운 야당 공세에 구석에 몰린 윤 대통령은 비상대권을 행사했으나 4일 탄핵심판대에서 파면이라는 최후를 맞이했다. 결과적으로 치명적인 오판을 범한 셈이 됐다.재임 내내 불통 꼬리표이날 오전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되며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된 윤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내내 '불통'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다녔다.2022년 5월 10일 임기를 시작한 윤 대통령은 처음부터 여소야대라는 불리한 국회 지형 속에서 첫발을 떼야 했다.국회에서 입법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탓에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과제는 좀처럼 추진력이 붙지 못했고 오히려 야당이 여야 합의 없이 강행 처리하는 법안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4회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의결했다. (대통령실 제공) 2023.4.4/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지난 2023년 4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시작으로 윤 대통령이 파면되기 전까지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만 총 25건에 달한다. 사실상 1개월에 한 번꼴로 법안을 국회로 돌려보냈다.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대선 패배 후 2022년 6월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하고 곧장 당권을 잡으면서 윤 대통령과 갈등은 더 격화했다.사법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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